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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amerin
   [2017년 05월 21일]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
성경 : 마 5:7
제목 :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

一. 성도는 긍휼함을 받은 자이다.
본문의 ‘긍휼’은 '자비'란 뜻은 헬라원어 '엘레오스'에서 나온 말이다. 특 70인역에서 이 '엘레오스'는 '사랑'이란 뜻의 히브리어 '헤세드'와 '동정'이란 뜻의 히브리어 '라하밈'의 변역어로 쓰였다. 즉, 긍휼의 원어 “엘레오스”는 구약에서 긍휼, 자비, 사랑 그리고 동정의 뜻을 가진 포괄적 단어이다. 그 중에서 '헤세드'(사랑)는 주인과 종, 또는 친지들 사이의 관계, 또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언약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태도를 의미하며, 이 용어는 구약에서는 주로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의미했으며, 신약에서는 언약의 성취자이신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사역을 가리킨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본받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자들은 바로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는 것이다. 즉 긍휼히 여긴다는 말은, 죄를 용서해 주는 것과 고통과 궁핍을 당한 자를 동정한다는 의미를 포괄한 것이다.

긍휼은 하나님이 주시는 특별한 은혜이다. 롬 9:15-16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행위나 상태를 보아서 긍휼이나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자유의지로서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신다. 하나님의 긍휼과 불쌍히 여김을 받는 것은, 사람의 청원이나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과 선택으로 말미암아 된다. 즉, 인간의 요구, 소원, 청원 같은 인간의 노력과 행위에 따라 긍휼히 여겨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혼자서 단독적인 역사로 행하시는 일이다.

롬 9: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하나님의 자유의지에 의해서 되어진다. 인간의 행위나 의사와는 관계없이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신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팍케 하여 이스라엘의 구원운동을 방해하도록 하고, 정한 때에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열 가지 재앙을 내려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내셨다. 하나님께서 다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홍해까지 추격토록 하셨고, 하나님께서는 크신 능력으로 홍해를 갈라 이스라엘은 구원하시고, 바로의 군대는 멸망시켜 온 세상에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시고 하나님의 이름이 온 땅에 퍼지게 했다.

그러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은 범죄 한 인류의 조상을 불쌍히 여기시고 찾아오셔서 그들에게 가죽 옷을 지어 입히셨다. 창 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물론 이것은 영적으로 하나님께서 장차 그리스도를 보내서 속죄의 죽음으로 죄인을 대속해 줄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하여 짐승의 피를 흘려 그 가죽옷을 입혀 주신 것인데, 그 근본은 불쌍히 여겼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을 주장하셔서 혹은 강퍅하게 혹은 긍휼히 여기신다.

엡 2:4-5에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셨고.”라 하였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심으로 인하여, 우리가 구속함을 받았다. 우리 영혼이 허물과 죄로 인하여 죽었었으나,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 택자로 예정하시고 그리서도 복음을 영접하게 하시므로 거듭났다. 그레서 딛 3:5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라고 하였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의 의로운 행위로 인함이 아니고, 순전히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어떤 의로운 행실을 감안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심으로 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로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은혜, 그의 선하심과 사랑이 우리의 구원의 원천인 것이다.

마 18:23절 이하에 보면, 어떤 임금이 그 종들과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에게 “네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으라” 하였다. 그 때 일만 달란트 빚진 종이 주인에게 엎드려 절하면서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고 사정하였다. 종의 주인은 일만 달란트 빚진 종을 불쌍히 여겨 그가 진 모든 빚을 탕감하여 주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신 것을 가리킨다. 우리가 하나님께 진 빚을 돈으로 환산하면 일만 달란트도 넘는 것으로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을 갚으려면 내 몸과, 처와 자녀, 내 모든 소유를 다 팔아도 갚을 수 없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긍휼히 여겨 탕감하여 준 것이다. 엡 1:7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라 하였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가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를 전부 사하여 주셨다. 시 103:13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육신의 부모가 자녀를 불쌍히 여김같이, 하나님께서도 당신을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겨 주신다.

우리는 미련하여 자주 자주 범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과를 따라 즉시 처치하지 아니하시고, 회개할 때마다 사랑과 자비와 긍휼로 용서하여 주신다. 느 9:19 주께서는 연하여 긍휼을 베푸사 저희를 광야에 버리지 아니하시고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길을 인도하시며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 행할 길을 비취사 떠나게 아니하셨사오며, 9:27 그러므로 주께서 그 대적의 손에 붙이사 곤고를 당하게 하시매 저희가 환난을 당하여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크게 긍휼을 발하사 구원자들을 주어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거늘.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므로 하나님을 진노케 하였으나(출 32:1-6), 하나님께서 아주 버리지 않으시고 광야 40년 동안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해 주시고, 약속대로 가나안 땅까지 인도해 주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죄값으로 대적에게 붙여 환난을 만나게 하였으나 그들이 환난 가운데서 부르짖을 때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셨다. 성도는 하나님의 긍훌함을 입은 자들이다.
二. 남을 긍휼히 여길 때 긍휼함을 받는다.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신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가 항상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겨 허물을 덮어 주어야 한다. 우리에게 손해를 주고 잘못을 범하였을지라도 불쌍히 여기고 용서해 주어야 한다. 잠 14:31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 가난하고 어렵고 연약한 자를 학대하는 것은 그를 지으신 여호와를 학대하는 것이나,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이니 그것이 주를 경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을 불쌍히 여기면 자기 자신도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아울러 선행에 대한 대가를 받게 된다. 잠 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면, 하나님은 그것을 빚진 것으로 여겨 보답하여 주신다.

예레미야 38장에 보면, 유다 방백들이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구덩이에 빠뜨렸을 때, 환관 에벳멜렉은 시드기야왕에게 간청하여  예레미야를 구원하여 냈다.(38:7-13). 그러므로 에벳멜렉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어 유다 나라가 바벨론에 멸망당하던 날에 구원을 받았다. 선지자를 불쌍히 여기고 긍휼을 베푼 에벳멜렉을 하나님이 환난 날에 그 생명을 구원하여 주셨다. 열왕기하 6장에 사마리아 성에 갇힌 아람 군대를  이스라엘 왕은 죽이자고 하였으나, 엘리사는 “치지 마소서 칼과 활로 사로잡은 자인들 어찌 치리이까 떡과 물을 그 앞에 두어 먹고 마시게 하고 그 주인에게로 돌려 보내소서” 하고 오히려 죽이지 말고 그들에게 떡과 물을 주어 잘 대접하여 돌려보내라고 했다. 이스라엘의 원수인 아람군대를 죽이면 대적의 위협이 없이 평안할 수 있지만, 원수들의 생명도 불쌍히 여기고 사랑으로 대하였다. 롬 12:21-21에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하였다. 원수를 긍휼히 여기고 선대하므로 숯불을 그들의 머리에 쌓아 놓으므로, 그들이 돌아가서 다시는 이스라엘을 치러오지 않았다. 이것이 긍휼히 여김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긍휼히 여기는 자가 복있는 자이며 자신도 환난 때에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된다. 출 32:9-12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모세가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애굽 사람으로 이르기를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목이 곧은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 멸하시고, 순종하는 백성들을 주시겠다고 하였지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긍휼히 여겨, 그들을 멸하시지 말 것을 하나님께 기도했다. 모세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여호와께서는 뜻을 돌이키시고 이스라엘에게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셨다.

약 2: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남을 긍휼히 여기지 않고 관용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긍휼없는 심판을 받게 된다. 마 18:23-35에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 받은 사람이 길을 가다가 전에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을 만났다. 그 때 그가 빛진 자의 목을 잡고 돈을 갚으라고 하였다. 그 때에 동관이 “나를 참아주면 갚겠다”고 간구하였으나, 허락지 않고 빚을 갚도록 감옥에 가두었다. 데나리온은 일만 달란트의 60만분의 1에 해당한다. 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괘씸히 여겨 그 사실을 주인에게 고하였다. 주인이 노하여, 탕감해 준 종을 불러 “악한 종아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겨야 되지 않겠느냐”고 책망하고, 탕감 받았던 빚을 다시 갚도록 옥에 가두었다.

창 42:21-22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인하여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너희더러 그 아이에게 득죄하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피 값을 내게 되었도다 하니.  야곱이 애굽에 양식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 아들들에게 애굽에 가서 곡식을 사오라고 재촉하였다. 요셉의 형제들이 애굽에 가서 총리인 요셉 앞에 엎드려 절하고 양식을 팔 것을 간청하였다. 그러나 요셉은 이 형들은 정탐으로 취급하여 감옥에 가두고 그들 중 한 사람을 보내서 말째 아우를 데리고 와야 진실한 것을 인정하겠다고 했다. 이에 요셉의 형들이 과거에 요셉이 구덩이 던져서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긍휼히 여기지 아니 하였으므로, 이제 요셉이 당하였던 괴로움이 자신들에게 임하였다고 하였다. 요셉이 형들을 붙들고 애걸할 때에 장자 르우벤이 “득죄하지 말라”고 만류하였으나, 다른 형제들이 그 말을 듣지 않고 강퍅히 행하였더니, 이제 그때에 해하였단 악한 일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이라 자책하였다. 어느 때에나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임하는 법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자처럼, 모든 죄를 용서받은 자이므로 다른 사람이 내게 잘못한 것이 있을 때 용서해 주어야 한다. 성도가 중심으로 형제의 죄를 용서하여 주지 않으면, 이처럼 긍휼 없는 심판을 받게 된다. 잠 21:13 귀를 막아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의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 이웃이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보고도 도와주지 않으면 자기가 고난당할 때에도 도와 줄 사람이 없다. 환난 당하는 자의 부르짖음을 들어주고 도와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갚아 주신다. 자기도 앞으로 어려움을 당할 때에 하나님과 사람들이 도와 줄 것이다. 마 6:14-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성도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어야 하나님의 사죄 은총을 입는다.



결론
1. 성도는 하나님의 긍휼함을 입은 자이다.
2. 남을 긍휼히 여길 때 긍휼함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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