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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amerin
   [2019년 4월 21일]"부활하신 주님의 명령"
제목 : 요 21:15-23
제목 : 부활하신 주님의 명령

一. 주님의 양을 먹이고 치라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물으신 것은, 다른 제자들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참으로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는 뜻이다. 주께서 이렇게 물으신 이유는, 마 26:33에 베드로가 "다 주를 버릴찌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하고 장담하기는 했지만, 주님이 잡히던 날에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했던 일을 상기시켜 회개초록 하기 위함이다. 또, 주님이 세 번 거푸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것은, 하나님의 양을 먹이고 치는 목자의 사명과 책임의 중대성을 깨달아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 사명은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는 사람만이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주님은 우리 각인이 부모로서, 신앙의 선배로서, 믿음의 호주로서, 혹은 교회의 직분을 맡은 자로서 각각의 양무리를 맡기셨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가 해야 할 일은 주께서 맡기신 양들을 먹이고 치는 일이다. 먹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영적으로 가르쳐서 영의 양식으로 그 영혼을  길러 나가라는 뜻이다. 이 사명은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해야만 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어머니가 아이를 사랑으로 기르는 것과 같다. 바울은 고전 4:15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하였다. 학문적으로 교육하며 지도해 주는 사람은 많지만, 아버지와 같은 마음과 사랑을 가지고 제자를 자기 자녀와 같이 사랑하며 가르치는 자는 많지 않다. 바울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고린도 교인들에게 가르쳐 줄 때 그들의 영혼이 살아났다. 양을 치라는 것은, 양들을 주님의 뜻대로 인도하여 거짓 사상에 미혹되어 실족하지 않도록 돌보아주고, 그들의 신앙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나가도록 길러 나가라는 것이다. 양들을 바른 신앙의 길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실력과 자격을 갖춘 장성한 신자로 만들라는 것이 주님의 명령이다.

우리 나라 의무교육 제도하에서 누구나 7-8세가 되면 학교에 들어가야 한다, 학교에 들어가면 그 아이는 학생으로 인정을 받는다. 그러나 그 아이가 학생으로서 갖추어야 할 학식과 소양을 습득하는 것은 단지 학교에 들어간다고 해서 저절로 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을 가르치기에 적합한 실력과 자격을 가진 교사가 학생들을 지도하여야 하고, 학생들은 선생님의 가르침을 잘 받아야 한다. 만일 교사가 단지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선생의 직을 감당하다면, 그는 단지 앵무새처럼 날마다 똑 같은 일을 반복하며 지식을 파는 일반 상인들과 다를바가 없을 것이다. 교사의 가치는 학생들을 전인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나가는데 있다. 그러므로 그는 학생들에게 멸시당하지 않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언행심사가 다른 이의 본이 되어야 한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남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다른 이보다 더 많이 말씀을 배워야 하고, 언행이 일치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남을 가르치고 자신은 배우지 않으면, 결국 나중에 자신은 버림받게 된다. 마 5: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말씀을 행하며 가르친 자가 큰 자이다. 바리새인과 같이 말만하고 행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손가락질을 받는다. 그러므로 롬 2:13에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라고 하였다.

호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하나님은 성도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구속의 은혜를 바로 깨달아 알고 감사함으로 제사를 드리는 자를 기뻐하시고 원하신다. 인생의 가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하나님을 경외하며 영이 살아나가고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이루어 나가는데 있다. 어느 때나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는 진리를 깨닫는 자는 복 있는 사람이다. 율법의 강령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세계에서 영으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을 원하신다.  

딤전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성도가 진리를 많이 깨달아 알기를 원하신다. 바른 진리를 많이 알고 깊이 알아야 자신의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갈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달아 하나님을 바로 섬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진리를 알지 못하면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도 없고, 자기 자신을 말씀대로 만들어 나갈 수도 없다. 건축법과 건축 재료와 그 용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좋은 잡이나 건물을 건축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분명히 있었으나,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아는 바른 지식이 없어 망하였다. 호 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성도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과 그의 뜻을 아는 지식을 많이 가진 자는 신령한 눈이 밝아지고 분별력이 생기고 영적 실력이 커져 강해지므로,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행하므로 만사가 창성해 나간다.

욥 8:7에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하신 말씀도, 신앙의 연조가 오래되고 점점 더 많이 하나님의 말씀을 꺠달아 행하면 반드시 처음보다 나중이 더욱 심히 창대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무조건 연조만 오래 되면 창대케 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오래 된 연조에 비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행하는 면이 많을 때 그 만큼 창대케 해 주신다.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성도 각자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한 마음 한 뜻을 품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육성시켜 나가야 한다. 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나서 그리스도의 모든 덕성(德性)과 지성(知性)과 능력이 충만해야 한다. 에수께서 마 28:19-20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말씀하셨다. 복음을 영접하여 주님의 제자가 된 사람은 누구나 세상 끝까지라도 가서 이 복된 소식을 전하여,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는 모든 자들에게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그들을 하나님의 사람에 합당한 실력과 자격자로 양육하여야 한다. 즉, 전도하여 신자를 얻으면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가르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라는 것이 예수님의 분부이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도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다. 신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그 말씀을 지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른 이것이야말로,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 시대 우리 모두에게 주신 사명이며 명령이다.

요일 3:18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하였다. 참된 사랑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을 나타내기 위해 자기 희생과 헌신이 따라야 한다. 창 29:20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 년을 수일 같이 여겼더라. 야곱이 라헬을 사랑했기 떄문에 그녀를 얻기 위해 일했던 칠년이 수일과 같이 지나갔다고 하였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하는 일은 힘드는 줄도 모르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우리가 참으로 주님을 사랑한다면,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갖은 고난을 당하시고 마침내는 죽기까지 하신 주님의 명령을 순종할 것이 분명하다. 주님의 양들을 먹이고 치라는 것이 부할하신 주님의 명령이다.



二. 다른 이는 상관 말고 주님을 따르라
예수님께서 18절에 베드로에게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말씀하셨다. 이는 장차 베드로가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다가 핍박하는 자들에 의해 결박당하여 원치 않는 곳으로 끌려가서 마침내는 순교 당하게 될 것을 예고하신 말씀이다. 그 때 베드로는 문득 예수님이 사랑하는 디른 제자 요한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가 궁금하였다. 그래서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하고 예수님에게 물었다. 에수께서는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하고, 다른 사람은 상관하지 말고 “너는 나를 따르라” 말씀하셨다.

주님을 따라 갈때에 다른 이는 상관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각인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가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롬 9: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세상만사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하나님의 자유의지에 의해서 결정되어 진다. 인간의 행위나 의사, 희망과는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의 예정대로, 어떤 이는 긍휼히 여겨 구원하여 주시고 또 어떤 이는 그 마음을 강퍅케 하여 구원받지 못하도록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이 예정하신 일에 대해 항거할 수 없다. 토기장이가 자기 뜻대로 그릇을 원하는 그릇을 만들 듯이, 교회의 모든 지체도 하나님의 필요의 용도대로 두셨으므로, 우리는 다만 그분의 뜻대로 순종할 것뿐이지, 자신의 신분이나, 역할, 위치에 대해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시기, 질투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악한 행위가 된다.

고전 12:29-30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다 똑 같은 능력과 재능, 은사를 주시지 않는다. 성도 누구나 다 선지자나 교사가 될 수 없고, 능력을 행하고 병을 고치며 방언을 말하거나 통역하는 자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 각인의 능력과 믿음의 실력에 따라 각각 서로 다른 은사와 달란트를 주시고, 그것을 서용할 수 있는 길을 예비하여 일하도록 하신다. 즉, 교회의 지체로 삼은 자들은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모두 복음 사역에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역사하신다. 따라서 우리 성도는 하나님의 이런 주권적 예정과 섭리를 깨닫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누가 보든지 그렇지 않든, 남이 알아주던지 몰라주던 관계없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위치와 자기의 사명을 감당하여야 한다. 다른 이가 어찌하든 상관하지 말고, 지체로서 서로 협력하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워나가는 것이 주님을 따라가는 것이다.

베드로는 요한의 장래에 대해 알 필요도 없고, 또 요한이 장차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말고, 자기 길만 가면 되는 것이다. 나와 다른 사람을 비교하여, 그 결과로 나쁜 영향을 받는다면, 그것은 참으로 지혜롭지 못한 일이다. 다른 사람의 미래는 우리가 상관할 수도 간섭할 수도 없으며, 오직 주님의 손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나와 남을 비교하지도 말고 또 남의 일에 상관하지도 말아야 한다. 각인에게 하나님이 맡기신 은사와 직분, 사명이 각각 다르므로, 각자 자기의 일만 하면서 주님을 따라가면 그것으로 족하다. 베드로는 주께서 이미 말씀하신 대로 맡겨주신 양무리들을 먹이고 치며, 순교를 각오하고 주님을 따라가면 되는 것이며, 요한은 요한대로 하나님이 정하신 기간 동안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갈렙, 모르드개, 다니엘)  

인생의 길은 베드로나 요한의 희망이나 뜻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대로 된다. 베드로와 같이 순교 당할 자로 예정되었으면 반드시 순교 당하게 되고, 또 요한과 같이 오래 살면서 주의 일을 하기로 예정된 사람은 그 예정대로 되는 것뿐이다. 전 7:13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는 사람이 어떤 모양으로도 절대 변경할 수 없다. 하나님이 굽게 해놓으신 것을 사람이 곧게 펼 수 없다. 굽은 것은 굽은 대로 사용해야 하고, 곧은 것은 곧은 대로 사용해야 한다. 그러므로 쓸데없이 다른 사람이나 다른 이의 일에 상관하여, 그 사람은 어떻게 되겠는가 하는 괜한 관심을 갖지도 말고, 또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왜 나에게는 이런 십자가를 주시는가 하고 불만이나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

찬송가 #339장 “내 주님 지신 십자가” 1절 가사에 “내 주님 지신 십자가 우리는 안질까 뉘게나 있는 십자가 내게도 있도다”라고 하였다. 누구에게나 주님이 짐 지워주신 십자가가 있다. 우리 주님에게도 성부 하나님께서는 택자의 구속을 완성하는 십자가를 짐 지워주셨던 것처럼, 우리 모두에게도 주님이 짐 지워주신 십자가가 각각 다 있다.  내가 할 일과 남이 할 일 각각 따로 있으므로, 자기의 일, 자기의 짐, 자기의 길만을 순종하여 가는 것이 바른 신앙이다. 사람들은 보통 남의 떡을 크게 보는 경향이 있다. 자기 것은 하찮게 여기고, 남의 것만 좋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다른 이와 비교하여 남이 하는 일은 쉬워 보이고 좋아 보이고, 내가 하는 일은 힘들고 하찮은 것으로 여긴다.

어떤 이가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 쓸 것을 다 쓰면서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은 형편 닿는 대로 하는 그런 사람을 따라가는 것이 과연 올바른 믿음인가? 부활하신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다른 이가 온전치 못한 십일조 생활을 하든 말든, 자기 기분에 따라 아니면 자기 과시를 위해 봉사를 하든 말든 그 것이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우리 각인의 재능과 실력에 딱 맞는 달란트를 주시고 일하도록 해 놓으셨으므로, 우리가 주님의 주권을 믿고 힘써 행하면 모든 것을 능히 감당할 수 있다. 내게 주신 귀한 것을 다른 이와 비교하여, 내 것이 귀하다고 남을 무시하지도 말고, 내 것이 남의 것만 못하다고 하여 열등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은사와 분량을 바로 깨달아, 다른 이는 상관하지 말고 자기 일에만 충성하고 전체에 대한 일비지역(一臂之力)을 감당해 나가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지혜 있는 성도이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도이다. 다른 이는 상관하지 말고 주님을 따르라는 것이 부활하신 주님의 명령이다.





결론
1. 주님의 양을 먹이고 치라.
2. 다른 이는 상관 말고 주님을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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