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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amerin
   [2019년 3월 17일]"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음이라"
본문 : 대하 13:13-18
제목 :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음이라

一. 하나님을 의지하면 형통하다.
B.C. 913년경 유다의 제 2년 왕으로 아비야가 그 아버지 르호보암을 이어 유다 왕위에 올랐다. 그 때에, 북 이스라엘에서는 여로보암 왕이 즉위 한지 18년 되던 때로서, 왕상 15:1에는 아비야를 “아비얌"이라고 하였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진 이후,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자주 전쟁이 있었는데, 아비야가 왕위에 오른 후에도 역시 계속해서 전쟁이 있었다(왕상 15:6-7).

아비야의 군사 40만과, 여로보암의 군사 80만이 서로 대진했다. 전쟁이란 기본적으로 대등한 조건 속에서 이루어져야 승산을 예측할 수 있는 것인데, 유다는 이스라엘의 절반밖에 안 되는 군사력으로는 시작부터 패전에 대한 심리적 위기에 처하였다. 그러나 아비야는 승리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가졌다. 그가 이번 전쟁에서 승리를  확신한 이유는, 12절의 말처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사 우리의 머리가 되실 것“임을 믿었기 때문이다. 여로보암과 북이스라엘을 향한 그의 말은 단순한 허세나 심리전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만 하면, 그 무엇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5절에 아비야는 하나님께서 다윗과 세우신 영원한 언약을 근거로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가졌다. 하나님께서 이미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소금 언약으로 친히 언약하신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분명히 지키실 것을 믿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후손인 남쪽 유다와 함께 하실 수밖에 없다는 아비야의 이런 믿음은, 한 마디로 신앙의 정통성에 대한 확신이었다. 단순히 다윗의 자손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영원한 언약을 근거로 자신의 확신을 지켰다.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다. 이 확신만 있으면 세상에 두려울 것이 하나도 없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지금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없으므로 두려워 하는 것이다.

영적으로 북 왕국 이스라엘은 타락한 교회를, 남 유다는 참교회를 상징한다. 이는 타락한 교회와 참교회 사이에는 항상 전쟁이 계속 될 것을 예표하는 것이다. 유다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리고, 레위 사람으로 제사장을 세우고, 7월 절기를 지켰으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변경시켜,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섬겼고, 레위인이 아닌 사람을 제사장으로 세웠으며, 8월 절기를 변경하여 지켰다. 이처럼 진리와 비진리의 싸움, 말씀대로 사는 신실한 성도와 그렇지 못한 외식하는 성도 간은 싸움은 세상 끝날까지 계속된다. 유다왕 아비야가 에브라임 지방에 있는 스마라임 산에 진을 치고 여로보암과 그 군대에게 싸움을 중지하자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 이유는,  


첫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윗과 그 자손에게 주셨다다(삼하 7:12-13).
여로보암과 그 군사들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윗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소금 언약"은 “변치 않는 언약"이라는 의미이다(레 l2:13 ; 민 18:19).

둘째, 솔로몬의 신복 여로보암이 난봉과 비류들을 모아 르호보암을 대적하여 나라를 갈랐다(왕상 11:26 ; 12:20-21).
“난봉"은 허랑방탕하는 자들을, “비류(匪類)"는 불량한 자들을 가리킨다. 여로보암이 정상적인 사람들로는 다윗의 계통에서 나라를 빼앗을 수 없으므로, 난봉이나 비류들을 모아 그들로 백성을 충동하여 10지파를 빼앗았다. 그때에 르호보암이 강했다면 그 나라를 빼앗기지 않았을 것이나, 그의 실력과 처사가 어려서 그들의 반역을 막지 못하고 열 지파를 빼앗겼다는 것이다.

셋째, 북 이스라엘은 허무한 우상을 섬긴다(왕상 12:25-33). .
여로보암도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섬겼다. 이것은 북쪽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기 때에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하여 유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에서 제사를 드려야 하나님께 합당한 것이다 (7:12 ; 신 12:5 ; 왕상 8:29).

넷째, 레위 자손이 아닌 보통 백성들로 제사장을 삼았다(9절).
제사장은 율법을 따라 레위 지파 중 아론의 후손 중에서 세워야 된다(출 28:1-4). 여로보암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쫓아내고 이방 풍속을 좇아 누구든지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 일곱을 가지고 오는 자들을 제사장으로 세웠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큰 죄가 되었다.

다섯째, 절기를 변경시켜서 지켰다(왕상 12:32-33).
하나님이 정해준 절기 초막절(수장절)은 7월 15일인데(레 23:34), 여로보암은 8월 15일로 고쳐서 지키게 하였다.

번면에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바로 섬기려 하였다. ➊하나님을 배반치 않고 여호와를 자기들의 하나님으로 섬긴다(10절上), ➋말씀대로 아론의 자손으로 제사장을 삼는다(10절下), ➌아침, 저녁으로 번제단에 번제를 드리며 분향한다(11절上), ➍매 안식일마다 진설병 상애 떡을 교체한다(11절中), ➎저녁마다 성전의 금등대에 불을 켠다(11절中), ➏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11절下), ➐하나님께서 유다의 머리가 되신다(12절上), ➑전쟁에 나갈 때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어 하나님의 감동으로 나간다는 것(12절中) 등이다. 그러므로 아비야는 북 이스라엘이 유다 백성과 싸우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므로, 형통하지 못하리라고 하였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말씀을 변경시켜 하나님을 섬기는 타락한 교회의 상징이고, 남 유다는 성경대로 바로 믿는 참된 교회의 상징이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바로 믿고 진리를 바로 세워 나가는 참교회와 함께 해주신다. 참교회를 대적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아비야와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바로 섬기므로, 하나님이 반드시 도와주어 승리할 것을 확신하고 나갔다. 숫적으로는 북 이스라엘 군대가 남 유다 군대보다 갑절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결과는 남쪽 유다의 승리로 끝났다(16-17절). 이때에 유다가 북 이스라엘 군대 50만명을 죽이고, 여로보암과 이스라엘 군대에게 항복을 받고, 벧엘과 여사나 등 여러 성읍을 빼앗아 나라를 더욱 확장시켰다. 이 전쟁에서 아비야에게 패전한, 북 왕국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은 다시는 강성하지 못하고 여호와의 치심으로 죽고 말았다. 그는 이스라엘을 분열시켜 22년 동안 왕 노릇하다가 하나님께 벌을 받아 비참하게 죽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형통하다.

二.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면 그릇된 길로 간다.
13:16-17 이스라엘 자손이 유다 앞에서 도망하는지라 하나님이 그 손에 붙이신고로
아비야와 그 백성이 크게 도륙하니 이스라엘의 택한 병정이 죽임을 입고 엎드러진 자가 오십만이었더라. 하나님이 유다의 손에 이스라엘을 붙이신 고로, 유다가 40만 군대로 80만 대군을 이길 수 있었다. 전쟁의 승패는 군대의 많음이나 마병과 창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있다(잠 21:31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북 이스라엘의 여로보암과 그 군대가 유다 군대를 앞뒤로 포위하여 공격하려고 하던 그때, 다급해진 유다 군대가, ➀여호와께 크게 부르짖고, ➁제사장들은 나팔을 불었다(14). 아비야와 유다 백성이 평소에 하나님을 바로 섬겼고, 전장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해주실 줄 믿고 위급할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 손에 붙이시고 유다를 도와 승리하도록 해주셨다.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전쟁들의 승패가 하나님께서 어느 편에 서서 싸워주셨는가에 따라 결정되었다. 여로보암의 80만 대군이 그 절반에 불과한 40만 유다군과 싸워  50만 명이 전사하며 패전한 것은,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 싸움에서 패한 여로보암은 다시는 세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였다. 이것은 또한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떠나서 복되고 성공된 인생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교훈한다. 하나님을 바로 섬겼던 아비야 왕은 점점 강해지고 창성해지고, 자기 생각대로 하나님을 섬겼던 여로보암은 점점 약하여지다가 마침내 망하고 말았다. 하나님은 이처럼 진리의 말씀대로 행하는 자와 함께하시고,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신다. 그러므로 이런 승리의 삶을 살고자 하면, 항상 하나님 앞에 겸비하여 말씀을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어느 때나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약 4:6)

왕상 15:3-5 아비얌이 그 부친의 이미 행한 모든 죄를 행하고 그 마음이 그 조상 다윗의 마음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윗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저에게 등불을 주시되 그 아들을 세워 후사가 되게 하사 예루살렘을 견고케 하셨으니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자기에게 명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 아비얌이 자기 아버지 르호보암과 같은 죄를 범하여 그 행위가 하나님 앞에 온전치 못하였다. 아비얌이 범죄했어도 하나님께서 아주 멸절하지 않으신 이유는, 다윗이 하나님을 잘 섬겼으며 하나님께서 다윗의 계통에서 왕권이 끊어지지 않도록 해주시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역대기 기자는 열왕기 15:3절에 아비야가 다윗처럼 하나님께 온전치 못했다고 기록하였다. 아마도 그가 여로보암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그 마음이 교만하여져서 그 때로부터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였기 때문에 결국 부왕 르호보암처럼 여호와 앞에서 온전하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대하 11:21-22 르호보암이 아내 십팔과 첩 육십을 취하여 아들 이십팔과 딸 육십을 낳았으나 압살롬의 딸 마아가를 모든 처첩보다  사랑하여 마아가의 아들 아비야를 세워 장자를 삼아 형제중에 머리가 되게 하였으니 이는 저로 왕이 되게 하고자 함이라. 아비야의 아버지 르호보암 왕은 18명의 아내와 60명의 첩을 두었는데, 그들로부터 아들 28명, 딸 60명을 낳았다. 아비야는 르호보암의 두 번째 아내인 마아가의 첫 아들이었고, 그 위로 첫째 부인의 소생인 아들 삼형제가 있었다. 따라서 넷째 아들이었던 아비야가 형들을 제쳐놓고 왕이 된 것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이었지만, 표면적으로는 아비야가 르호보암이 가장 총애한 마아가의 소생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아가는 왕의 어머니로서 왕비가 되었으나, 이방 신을 섬기는 우상 숭배자였으므로 자녀에게도 악한 영향을 주었다.

르호보암도 초기엔 하나님을 의지하고 각 지파에 흩어져 있던 제사장과 레위인들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내려와 유다에 합류하도록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정책을 시행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점차 강성해졌다. 그가 강성해지자, 자기 자만과 교만에 빠져 여호와를 떠났다, 하나님이 보내신 애굽왕 시삭에게 유다 나라가 초토화되는 환난을 당하였다. 아비야도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자, 이내 그 아비처럼 마음이 교만해져서 믿음에서 떠나 악행을 저지르다가 왕위에 오른지 3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아비야와 유다 백성들이 승리한 것은, 자기들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도와주셨기 때문이었다.

아비야는 “그 마음이 그 조상 다윗의 마음 같지 아니하였다”고 하였다. 잠 4:23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바른 진리의 말씀에 주의하며 귀를 기울이고 눈을 그 말씀에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 말씀을 마음속에 지키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영적 생명을 주고 육체도 건강하게 해주신다. 다윗도 죄악되고 연약한 본성을 지닌 인간이었으나, 그 마음의 중심이 늘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였다.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인생의 왕이요 주관자이신 하나님 앞에 늘 변함없이 겸손할 줄 알았다. 아무리 많은 일을 하고 큰 영광과 명예 속에 거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그의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 그의 마음은 소년 목동이었을 때나 통일 이스라엘을 이룬 왕이 된 후에나 변함없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겸손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형통케 만들어 주셨으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인정하여 주셨다. 아비야처럼 형편이 조금 나아지고 위치가 높아지면, 그것이 자기가 잘나서 된 줄로 잘못알고, 올챙이 시절을 잊어버리고 교만해 지는 사람은 자기 마음을 지키기 못하여 결국 그릇된 길로 가고 만다. 우리는 다윗처럼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늘 변함없이 순전하고 겸손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복을 받아 형통함을 누리는 저희가 되어야 하겠다.

결론
1. 하나님을 의지하면 형통하다.
2. 하나님을 떠나면 그릇된 길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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